‘감각이상’, 혹은 구조적 착시
곽영빈 | 미술비평가, 영화학박사
『감각이상』은 2019년 제12회 상상마당 KT&G SKOPF ‘올해의 최종작가’로 선정된 작가 김효연의 사진 작업으로, 일본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과 그 이후 세대를 대상으로 삼는다.1) 작가 노트에서 이는 “한 가족의 역사에서 시작”된, “아직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우리의 역사”로 기술되는데, 여기서 “한 가족”이란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작가 자신의 외할머니를 기점으로 구성된 가족을 지칭한다. 외할머니는 일본서 결혼한 남편과 부산에 머무르며 피폭을 피했지만, 자신의 작은 오빠는 ‘히바쿠샤(Hibakusha)’, 즉 피폭자가 되고, 이후 “단 한 번도 히로시마로 여행을 가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서술은 기만적이다. 그의 작업을 “본인의 가족사이자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2) 작가가 강조하듯, 그가 핵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은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하고 수시로 미사일을 발사했던 2017년인데, 특히 ‘전쟁이 나면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오라’는 어머니의 “심각하고 진지한” 당부가 분수령을 이룬다.
이 시차는 중요하다. 대부분의 둔감한 서술에서 봉합되고 말지만, 이 간극이 이른바 ‘당사자주의’ 혹은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라 할 곤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감각이상』이 자신의 가족을 원폭 피해자로 둔 ‘당사자’의 작업으로 환원될 때, 그 ‘가족’의 동심원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은 철저히 외부자로 상정될 수밖에 없다. 이때, 이른바 ‘역사적 외상(historical trauma)’을 다루는 예술 작업들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계몽’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이입(empathy)’ 또는 ‘동정(sympathy)’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원폭 피해자”의 나라이고,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였다는 사실을 몰랐던 ‘무지몽매’한 관객들은, ‘감정이입’이나 ‘동정’을 통해 지식의 간극을 메꿀 것을 요청받는 것이다. (작가가 “‘이 아픈 사람들을 보라’”3)라는 문장으로 요약하며 거리를 둔 관습적인 시각화 방식은, 이러한 프레임의 논리적이고도 과장된 산물이다)
이 문제는 2018년 초봄 합천을 처음으로 방문한 작가가 현지 주민들로부터 느꼈던 “무척 배타적인 느낌”이, 이후 “합천에서 방을 얻어 살다시피 하면서”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 후 원폭 피해자 2세대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사라졌다는 점에서, 얼핏 해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담학에서 ‘라포르 형성(rapport building)’이라 부르는 신뢰관계를 통해, 작가가 후자에게 ‘받아들여졌다’고, 후자의 동심원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동심원 밖에 있는 ‘관객’은 어쩔 것인가? 오랜 기간 영상작업을 했던 작가가 『감각이상』을 이른바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닌 사진의 형태로 담아냈다는 건, “원폭 피해와 관련된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 멈춰버린 것 같다”4)는 작가 자신의 매체적 인식과 독립적으로, ‘동심원의 안과 밖’이라는 문제를 작업 내부에서 제기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감각이상』이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인상적이다. 작가가 제공한 설명에 따르면, 제목인 “감각이상(Abnormal sense)”은 사전적 의학용어로 “내부 감각 등의 감각영역의 이상 경험 혹은 경험의 결핍, 자극에 의해 생긴 감각수용기의 흥분이 구심성 신경을 통하여 대뇌피질 감각영역에 전달되어 의식된 경험의 감각”을 지칭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정상적이지 않은 감각 모두를 이른다”고, “아픈 역사를 바라봄에서 소외되었던 그들의 상황과 내가 그들을 만나 겪었던 변화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덧붙인다. 이는 그의 사진이 포착한 이미지들이 ‘원폭 피해자’들을 앞에서 언급한 ‘계몽’과 ‘감정이입’, 또는 ‘동정’의 ‘대상’으로 제한, 또는 고립시키고 있지 않다는 인상,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을 바라보는 ‘관객을 의심스러운 투사(projection)의 주체로 연루시킨다’는 인상과도 맞물린다. 이는 대체 무슨 말일까?
오른손에 주황색 장난감 비행기를 들고, 정면으로 카메라를 마주하고 선 여자아이 사진을 보자. 작가의 포트폴리오나 샘플들 속에서도 전면에 위치되는 이 작업에서 우리의 눈을 끄는 건, 왼발에 비해 약간 안쪽으로 예각을 이루며 돌아간 것처럼 보이는 오른발이다. 나는 “돌아간 오른발”이 아니라 “돌아간 것처럼 보이는 오른발”이라고 썼는데, 그것은 이 인상이 관객인 내가 사진에 투사한 결과인지, 아니면 사진 자체가 그렇게 찍힌 결과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호함, 또는 비결정성은 원폭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높은 확률로 유전되는 것으로 알려진 미묘한 기형과 다운증후군의 사례를 덤덤히, 때론 정면으로 담아내는 『감각이상』의 다른 사진들을 통해 강화되는데, 특히 소녀가 들고 있는 비행기의 머리 부분이 화면 우측을 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배경의 회색빛 모서리 또한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에 주목할 때, 즉 이 작품 전체의 무게중심이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정향되어 있다는 구조를 염두에 두면 명백히 ‘내재적’인 것으로 드러난다.5)
이를 ‘구조적 착시효과’라 부르면 어떨까? 물론 위의 소녀가 포함된 자매가 투명한 전면유리문과 하얀색의 반투명 커튼 사이에 역광으로 서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두 장의 사진들이 웅변하듯, 우리의 불안한 투사는 사실로 드러난다. 하지만 합천으로 들어가는 도로 위에서 멈춰 찍은, 눈 덮인 풍경 사진이 마치 ‘낙진’을 연상시킨다거나, 뒤에서 찍은, 정수리부터 하얗게 눈 내린 듯 머리가 쇤 할머니의 뒷모습과도 겹쳐지고, 커튼 뒤로 보이는 자매들의 사진들 또한 ‘X레이’를 환기시키며,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바깥 빛을 배경으로, 강아지와 함께 카메라를 응시하는 할아버지의 실내 사진이 마치 히로시마 전체를 순식간에 녹여버렸던 핵폭탄의 절멸 직전과 연동한다면? 즉 이러한 착시가 관객과 피폭 당사자들 뿐 아니라, 2017년 무수한 전쟁 발발 뉴스 속에서 작가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던 후손들의 것이기도 하다면?
“모든 진실은 허구의 구조를 갖는다”6)는 라캉의 전언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관객을 의심스러운 투사(projection)의 주체로 연루시킨다’는 나의 언급과 공명한다. 이제 전쟁은 끝났다고, 더 이상 (핵)전쟁은 없다고, 이제 모든 것은 안정적이라고 아무리 되뇐다 해도, 피폭자들이 ‘거짓말’처럼 인류 최초로 경험했고, 후대에도 믿을 수 없는 유전과 전언의 형태로 계승된 원폭의 가공할 진실은, 그 어떤 현실도 허구와 착란으로 바꾸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 사진들이 불러일으키는, 믿을 수 없는 ‘감각이상’처럼.
1) 작가 자신의 조사에 따르면, 1945년 원자폭탄 투하 당시 히로시마에 거주하던 한국인 수는 대략 십여만 명이었고, 이중 피폭사로 잠정집계된 한국인 사망자 수는 무려 “4만 9천명이 넘는다.” 김효연,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원폭 피해자가 많은 나라이다」, 『보스토크』 Vol. 22, 2020, 226쪽.
2) 박지수, 「이제 알릴 때가 되었다- 김효연 작가와의 인터뷰」, 위의 책, 229쪽. 이 인터뷰는 바로 이 “자연스러운” 질문을 기점으로 시작되는데, 작가는 그것이 그리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답변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5) 이런 차원에서 이는 바르트가 ‘푼크툼(punctum)’이라 불렀던, 다른 관객의 경험과 공약불가능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효과와는 구분된다. 6) “[T]oute vérité a une structure de fiction.” Jacques Lacan, L’Éthique de la psychanalyse 1959-1960, Paris: Seuil, 1986, p.9.
‘Abnormal Sense’, or Structural Optical Illusions
Yung Bin Kwak | Art critic, Phd(Cinematic Arts)
Taking Korean atomic bomb survivors (the second largest in the world) and their posterity as its subjects,1) 『Abnormal Sense』 is a photographic artwork by Kim Hyoyeon, winner of the 12th KT&G SKOPF (Sangsangmadang Korean Photographer’s Fellowship). In her notes, this work is described as “our history yet to be illuminated properly” which “began from a family’s history.” The “family” in question refers to Kim’s own family, whose origin harks back to her own Hiroshima-born grandmother. While she evaded the bombing by staying in Busan with her husband, her brother became a “Hibakusha,” the atomic bobm survivor. Since then, she “never travelled to Hiroshima.”
Still, these descriptions are deceptive. For they make Kim’s works appear “natural as they are connected to her family history and her own identity.”2) As the artist emphasizes, however, it was not until 2017 when she began researching documents about atomic bombs- the year when North Korea made headlines with sucessful atomic experiments while launching missiles here and there. Crucial here is her mother’s “grave and serious” request to ‘come down to Busan by train, rather than via airplane, had a war broken out.
This temporal gap is critical. For this breach is dovetailed with the destitution of the so-called ‘adversary system’ or ‘communitarianism.’ That is, when 『Abnormal Sense』 is reduced to a work of the ‘adversary,’ whose family includes atomic bomb survivors, anyone outside the concentric circle of the family is immediately designated as outsiders. Then, the options proffered by artworks addressing the so-called ‘historical trauma’ are likely to be two: on the one hand, ‘Enlightenment,’ and ‘empathy’ or ‘sympathy,’ on the other. Put differently, those ‘ignorant’ viewers- who did not know that Korea was a country with “the second largest number of atomic bomb survivors” or that Habchon city remained “Korea’s Hiroshima”- are asked to fill in the knowledge gap through ‘empathy’ or ‘sympathy.’ (Conventional way of visualization- summed up with the phrase “Look at these sick people!”3) and as such shunned by the artist- is a logical and exaggerated product of this type of frame)
Considering how the “sense of cliquish exclusion” she received in early 2018 from the residents in Habcheon disappeared after “spending almost one year living nearby,” even to the point of meeting with the second generation of the atomic bomb survivors, this issue seems to be resolved. One could even argue that, via the so-called ‘rapport building’ or relationship of trust in counseling, the artist was ‘accepted,’ or included as part of the concentric circle. What about the viewers outside the circle, however? That she chose photography over ‘documentary film’ for the ultimate mode for 『Abnormal Sense』, despite the considerable amount of time spent working in cinema is suggestive not only because it pertains to her own understanding of artistic medium (“Life and memories of atomic bomb survivors appear to stop at a certain point of the past”4)). Rather, it raises the question of ‘the inside/outside of the concentric circle.’
In a nutshell, 『Abnormal Sense』’s way of responding to this question is quite impressive. According to the artist, ‘Abnormal Sense’ is a medical term, refering to “a sense of conscious experience in the sensory domain of the cerebral cortex through centripetal nerves, such as abnormal experience or lack of experience, and the excitement of sensory receptors caused by stimulation.” Still, Kim adds that it “encompasses all abnormal senses,” whereby she tried to “express their situations in which they were alienated from looking at painful history, as well as changes I experienced through meeting them.” This corresponds to the impression that the images her photography capture do not confine or isolate the ‘atomic bomb survivors’ to the ‘objects’ of ‘Enlightenment,’ ‘empathy’ or ‘sympathy.’ Or, more precisely, that they ‘render viewers complicit as suspcious subjects of projection.’ What does this mean?
Let’s take a look at the photo of a girl, holding an orange-color airplane with her right-hand, staring directly at the camera. In this image, often foregrounded in her portfolio or sample photos, what draws our attention is the girl’s right foot, which appears to be incurved slightly towards the inside, creating an acute angle in comparison with her left foot. I did not write that “her right foot is incurved” but that “her right foot…appears to be incurved” since it remains unclear if this impression or appearance results from my own projection into the photo or from the way it really is. Such ambiguity or indeterminacy is reinforced by other photos, in which cases of subtle deformity or Down Syndrome- widely known to be inherited down to the atomoic bomb survivors’ posterity with high probability- are captured with composure and determination. If we pay careful attention to the fact that not only the head of the airplane she holds points toward the right side of the frame, but also the gray corner in the background stands close to the right, i.e., the overall center of gravity in the work is structurally oriented toward the right, such indeterminacy turns out to be ‘immanent.’5)
How about calling it a ‘structural optical illusion’? To be sure, as two photographs in which two girls (of which the girl in question is part) stare at the camera- while standing in-between transparent windows and translucent curtains with their back against the sun- eloquently illustrate, our angst-ridden projection turns out to be true. Still, what if a snow-covered white landscape- a photograph Kim took in the middle of the road on her way to Habcheon- evokes ‘radioactive fallout’? Further, what if it overlaps no less with another image of a grandma, shot from behind, whose gray hair appears to be sprinkled with white snow (or, again, ‘radioactive fallout’)? What if the above-mentioned photo of the sisters, seen through the curtains, is reminscent of an ‘X-ray’? And, last but not least, what if a photo of a grandpa with his puppy in his living room, shot against blindingly bright light outside, is haunted by the paroxysmal moment of the atomic blast, melting the entire city of Hiroshima at one stroke? Namely, what if these putative optical illusions are operative not only among us, the viewers and Hibakusha- but also among their posterity, one of whom called the artist with frantic haste in the midst of media buzz over the potential outbreak of war in 2017?
It is precisely in this sense that Lacan’s well-known dictum (“every truth has the structure of fiction”6) resonates with my otherwise opaque statement (“[Kim’s works] render viewers complicit as suspicious subjects of projection”). No matter how much we insist on the effective end of (Korean) war, inconceivability of another atomic war, or, least but not least, stability of the world as such, the terrifying truth of the atomic bombs- as Hibakusha experienced it for the first time among humanity ‘like a lie’ before it turned into an unfathomable inheritance to posterity through genes and utterances- is capable of transforming any piece of reality into a fiction or fits of delirium. Not unlike the ‘abnormal sense’ Kim’s works bring forth in us.
1) According to the artist’s research, the number of Korean residents in Hiroshima when the A-bomb was dropped, amounted to 100,000. More than “49,000” people died as a direct result of the explosion. Kim Hyoyeon, 「Korea boasts the second-largest number of______in the world」, 『Vostok』 Vol. 22, 2020, p. 226.
2) Park Jisoo, 「Now It’s Time to Let People Know- Interview with Artist Kim Hyoyeon」, op. cit. p. 229. While this interview began with this “natural” question, Kim unfolds her story by noting it was not so “natural.”
3) op. cit., p. 231.
4) ibid.
5) In this sense, it must be distinguished from what Roland Barthes famously called ‘punctum’- a peculiar affective effect often considered subjective and incommensurable with others’ experiences.
6) “[T]oute vérité a une structure de fiction.” Jacques Lacan, L’Éthique de la psychanalyse 1959-1960, Paris: Seuil, 1986, 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