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죽은 몸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때 나는 여덟 살이었고 죽음이 무엇인지 아주 어렴풋하게만 알았다. 죽음은 할머니가 몸을 떠나 혼이 되는 것. 혼이 되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이의 무한한 여행이었다. 이제 혼이 되었기에 할머니는 어디에나 머문다고, 엄마는 내게 말했다. 그럼 할머니가 여기에도 있어?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아주 긴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머물렀던 외삼촌의 아파트 안방 문을, 한낮에 불을 끄고 숨어 계시곤 하던 장롱 문을 살그머니 열어보았다. 옷걸이에 사람처럼 걸려 있는 옷들에게서 할머니의 냄새가 났다. 찾았다. 할머니, 왜 여기 숨어 있어요? 내가 장롱 문을 열면 할머니는 다급히 손을 뻗어 장롱 안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 눈이 멀었고 언젠가부터 빛을 두려워했다. 할머니, 왜 빛이 무서워요? 내가 다시 물으면 할머니는 한 손으로 내 뺨을 어루만지며 다른 한 손으론 자신의 입술 앞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비행기가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으니 조용히 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시끄럽게 하면 군인들이 와서 우릴 잡아 갈 거야.

일찍이 너무 많은 것을 본 사람은 눈이 멀고 만다. 할머니는 눈이 멀었으면서도 여전히 볼 수 있는 사람처럼 종종 눈을 떴다. 그 흐릿한 회색빛 눈은 눈앞의 세상이 아닌 아주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이 검게 보인다는 걸까, 하얗게 보인다는 걸까. 아니면 검정도 하양도, 어떤 색채도 없는 상태에 머문다는 걸까? 할머니는 빛을 두려워했으니까 분명 빛은 알아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빛의 색이 아니라 온기를 알아챘던 지도 모른다.

오래 전 어느 오후, 할머니는 남향이었던 부산의 그 아파트 마루에서 벽에 가만히 손을 대어 빛을 만졌었다. 빛은 흐르는 물 같기도 투명한 불같기도 했다. 나는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집요하게 먹지를 태웠다. 종이가 타면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햇빛 냄새가 났다. 나는 햇빛 냄새가 좋아서 종일 마루에 엎드려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때 할머니는 불에 데인 듯 벽에서 손을 떼고는 웅크린 채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할머니 한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우글거리며 내는 소리였다. 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죽은 사람들의 목소리. 그날 휘몰아친 검은 폭풍에 휩쓸려 서로를 잃고, 내리는 검은 빗속에서 서로를 찾아 헤매다 폭사했다는 할머니의 오빠, 여동생, 그리고 할머니의 엄마 아빠의 목소리. 할머니의 뱃속에서 죽었다는 아기의 목소리. 할머니가 그해 다시 임신하고도 사산하고 말았다는 또 다른 히로시마 아기의 목소리.

그날, 나는 겨우 잠든 할머니에게서 열아홉의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첫 아기를 낳고서 퉁퉁 부은 얼굴로 병상에 죽은 듯 누워 있었다. 흔들어도 아기는 울지 않았다. 의사는 할머니에게 죽은 아기를 안겨 주었다. 열 달이 되기 훨씬 전에 태어난 손바닥만 한 작은 아기. 강보에 싸인 아기는 파란 색이었다. 파란 색. 플루토늄이 폭발하기 직전의 색.

이 할머니 가슴 속에 불구덩이가 있어. 할머니는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겨우겨우 말했다. 한겨울에도 할머니는 온몸이 타는 것 같다며 가슴 위에 얼음을 올려놓고 주무시곤 했다. 그래야 온 몸의 화기가 발밑으로 사르르 내려가는 것 같다고 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두려워 나는 할머니에게서 뒷걸음질 쳐 멀어졌다.

할머니가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간 시간은 이십 년도 채 되지 않았고, 한국에서 살아간 시간은 반세기 가까웠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일본어로 꿈꾸고 일본어로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어로 말하려면 일본어로 말할 때보다 시간을 들여야 했다. 빨간 약. 아카징꼬. 아름다운. 키레이나. 오빠. 오니짱. 계란. 타마고. 물통. 바케쓰. 빛. 피카. 꽃. 하나. 할머니의 한국 이름은 화자(花子). 할머니의 일본 이름은 하나코. 한국에서 할머니는 하나코를 숨기고 화자로 살았다.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이름은 화자. 은퇴를 앞둔 선생님은 소녀 시절 일본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고 나는 선생님의 하나코가 선생님 몸속에 숨어 있다고, 그래서 선생님이 우리 할머니처럼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조용히 과일을 깎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정작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기억 속 할머니는 엄마에게도 외삼촌에게도 가끔 일본 이름을 불렀다. 엄마는 할머니의 일본말을 종종 따라 썼고, 나는 엄마의 할머니 말을 따라 썼다. 말들은 지워지지 않는 할머니의 통증처럼, 폭탄의 파편처럼 우리 몸속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할머니의 언어는 40년대의 일본어와 전쟁 이후의 부산말이 섞인 언어였다. 학교 가믄 센진 닌니쿠 애들이 자꾸 그라는데 울 엄마 비녀 꼽고 한복 저고리라도 입으면은… 아이고 너무 창피했다… 여까지 용케 살아왔지. 근데 살어도 왜 너만 살아왔냐고 사람들이 그래 천불이 났다. 말로 다 할 수가 없제. 우째 살꼬 싶었다. 못 죽어서 산다. 온 몸이, 정신이 데꼬보꼬야. 괘안다. 내 걱정 마라. 인자 다시 안 울끄마.

할머니가 고통을 말하는 언어는 오직 일본어였다. 이타이, 이타이. 마치 그날 그때에 영원히 붙박여 있는 사람처럼. 이타이, 이타이. 할머니는 엑스레이를 찍지 않았다. 가스렌지를 쓰지 않았다. 원폭 냄새 맡는 게 싫다고 했다. 할머니는 형광등을 자꾸만 감추었다. 형광등이 머리 위에서 켜지는 게, 불꽃 튀기는 걸 볼까 봐 무섭다고 했다. 어디서 지진이 나거나 다시 전쟁이 터질까 봐 무섭다고 했다.

전쟁 나면 꼭 기차를 타야 하는 기라. 할머니는 나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할머니는 보지도 못하는 텔레비전 뉴스를 틀어놓고 지냈다. 화면 조정이 끝나고 지직거리는 텔레비전 화면만이 새벽 내내 할머니를 들여다보았다. 혼자 살아남은 할머니의 고독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외삼촌은 말없이 모든 커튼을 닫았다.

할머니는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장롱 틈으로 새어 든 희미한 빛 속에서 입술만을 움직여 내게 말했다. 탄이 터지면 이렇게 귀랑 눈이랑 가리고 바닥에 엎드리는 거라. 할머니는 나를 먼저 엎드리게 하고 한 팔로 나를 감싼 채 엎드렸다. 나는 실눈을 뜨고 할머니의 가래 끓는 희미한 숨소리를 들었다. 옥상 위로 폭탄이 터지면 눈이 멀고 귀가 멀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불에 탄 살갗이 빨갛게 부어올라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스무 겹의 장갑을 낀 것처럼 피부를 자꾸만 벗는 사람, 피부가 울퉁불퉁한 얼음처럼 굳어서 얼굴이 번쩍번쩍 빛나는 사람들을 할머니는 두려워했다. 나는 할머니의 그 공포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잠자코 할머니를 따라 숨죽였다.

나는 할머니 없는 부엌의 식탁 의자 위에 까치발로 올라서서 찬장 문을 모두 열어보았다. 작은 항아리 단지 안에 할머니가 모아둔 흰 각설탕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나는 각설탕 하나를 꺼내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손톱으로 조금씩 그것을 부수었다. 설탕은 희고 고운 모래 같았다. 부스러지는 할머니의 몸 같았다. 나는 그것을 맛보았다. 설탕은 녹으면서 혀끝에서 천천히 사라져갔다. 할머니는 소중한 것을 하나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하나도 먹지 않았던 거야. 나는 뚜껑을 덮고 할머니의 항아리를 다시 찬장 속에 넣어두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데, 동시에 그 혼이 세상 어디에나 머문다는 엄마의 말을 나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죽은 뒤 수천의 혼이 된 할머니를 생각했고, 그러면 그 혼은 내 필통 속에도 엄마의 서랍 속에도 할머니의 수첩 속에도 머물 수 있었다. 어쩌면 혼이 된 할머니의 몸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기차처럼 끝없고 거대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면 할머니 혼의 머리는 히로시마를 향하면서도 발은 이곳에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나는 제주의 설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먼 옛날, 설화 속 할머니는 몸이 너무 커서 혼자였다고 한다. 할머니가 잠을 자려면 한라산을 베개처럼 베고 누워야 했고, 누워서 발을 편하게 뻗으려면 섬에 구멍을 낼 수밖에 없었다. 섬의 낮은 산들은 할머니가 걸어 다닐 때 떨어뜨린 흙덩이들이었고, 섬의 천(川)들은 할머니가 앉아서 오줌을 눈 흔적이었다. 또 할머니는 자식이 오백 명이나 되었는데 어느 날 바다에 나간 아이들을 위해 한라산만한 큰 솥에 죽을 쑤다가 그 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배고파 어머니도 잊고 허겁지겁 죽을 먹던 아이들은 솥 밑바닥에 남겨진 어머니의 신발을 보고서야 죽음을 알아챘다. 아이들은 끝없이 끝없이 울다가 바위가 되었고, 그 눈물은 해마다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고 한다. 수만 년 전의 눈물이 아직도 그 섬에서 붉게 빛나고 있다, 보는 이 하나 없이도. 그것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나는 나의 할머니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자신의 고향 히로시마에 한 발을 딛고, 죽기 전까지 머물렀던 할아버지의 고향 부산에 다른 한 발을 딛은 모습을 떠올렸고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믿었다.

When my grandmother passed away, my mother didn’t let me see her dead body. I was eight then, and only vaguely knew what death was. Death meant Grandma left her body and became a spirit. It was an endless journey of one who had become a spirit and could go anywhere. Now that she has become a spirit, Grandma could stay anywhere, my mother told me. Then is Grandma here? My mother nodded without a word.

Grandma was playing hide-and-seek for a long while. I peeked into the door to the inner room at my uncle’s apartment where Grandma had stayed, into the closet where she used to hide with the lights out in the middle of the day. The clothes hanging in there like people smelled of Grandma. Gotcha. Grandma, why are you hiding here? When I opened the closet, she pulled me in urgently. She had become blind before I was born, and had been afraid of the light since some time or other. Grandma, why are you afraid of the light? When I asked again, she stroked my cheek with one hand and with the other, put a finger to her lips. It was her sign that an aircraft was passing over us, and that we had to stay silent. If we are loud, soldiers will come and take us.

It is said that one who has seen too much becomes blind. Grandma was blind but often opened her eyes as if she could still see. Her blurry, gray eyes seemed to look at not the world in front of them, but someplace far away. Not being able to see well, does that mean the world appears black, or white? Or does it stay in a state that is neither black nor white, without any color? Grandma was afraid of the light, so she must have recognized it. But perhaps she had sensed the warmth of light, not its color.

One afternoon a long time ago, in the living room of that sunfilled apartment in Busan, Grandma had laid her hand over the wall and touched the light. The light was like flowing water, or perhaps like transparent fire. I collected the sunrays with a magnifying glass and persistently burned the carbon paper. As the paper burned, heat shimmered up, and it smelled of sunlight. I liked the smell of sunlight, so I laid with my stomach down in the living room the whole day.

I don’t know what for. Grandma retracted her hand from the wall as if it burned, rolled up into a ball, and screamed. The sound was not from my grandmother alone but from thousands and tens of thousands of people swarming within. The voices of people who died in Hiroshima, on August 6th, 1945. The voices of Grandma’s older brother, little sister, mother, and father who had lost each other in the black storm that raged that day, wandered to find each other in the black rain and eventually died in the explosion. The voice of the baby who had died inside Grandma’s womb. The voice of another Hiroshima baby who Grandma had conceived again that year but was stillborn.

That day, I saw Grandma’s nineteen-year-old self in her as she barely fell asleep. She laid on the hospital bed with a puffy face after giving birth to her first baby. The baby didn’t cry even when shaken. The doctor put the dead baby in Grandma’s arms. A small baby, the size of a palm, born long before it was due. The baby in the blanket was blue. Blue. The color of plutonium, seconds before exploding.

There is a fire pit in Grandma’s heart. Grandma barely managed to say those words in her stuttering Korean. Even in the winter, she complained of her entire body burning and used to sleep with ice on her chest. She said then she felt the fire of her body receding under her feet. I was afraid of the eternally burning fire and backed away from her.

It was less than twenty years that Grandma was born in Japan and lived there and almost half a century that she had lived in Korea, but she said she still dreamed and thought in Japanese. It took her longer time to speak in Korean than when she spoke in Japanese. Ppalgan yak (red ointment). Akachinko. Areumdaun (beautiful). Kireina. Oppa (big brother). Onichan. Gyeran (egg). Tamago. Multong (bucket). Baketsu. Bit (light). Pika. Kkot (flower). Hana. Grandma’s Korean name, Hwaja (花子). Grandma’s Japanese name, Hanako. In Korea, Grandma lived as Hwaja, hiding her Hanako. My first grade homeroom teacher’s name was Hwaja. She was nearing her retirement age and had received Japanese education as a girl. I thought her Hanako was hiding in her body, and that was why she knelt down like my Grandma and quietly peeled fruits with a knife.

My mother in fact says she does not remember, but Grandma in my memories sometimes called Japanese names for my mother and uncle. My mother often followed Grandma and used Japanese words, and I, in turn, followed my mother‘s use of Grandma’s words. Words, like Grandma’s ineffaceable pain, like splinters of a shell, were deeply embedded in our bodies. Grandma’s language was one that combined 1940s-style Japanese and the post-war Busan dialect. When I went to school, the children kept saying senjin ninniku1, and if my mom put on a binyeo2 and wore hanbok3… My goodness, I was so embarrassed… It’s a wonder I survived. But people asked me why I survived alone, so a fire flared up inside me. I can’t describe it. I didn’t know how to live. I’m only barely living. My entire body and mind, it’s dekoboko. 4 I’m okay. Don’t worry. I won’t cry again.

The language Grandma spoke of pain was only Japanese. Itai, itai. As if she was forever stuck on that day, at that moment. Itai, itai. Grandma never took an x-ray. She never used the gas stove. She said she hated the smell of the atomic bomb. Grandma kept hiding the fluorescent light. She said she was scared of the light being turned on over her head, that she might see the flame blazing up. She said she was scared there might be an earthquake somewhere or the war might break out again.

If a war breaks out, you must get on the train. Grandma told me again and again. She always had the news turned on, even though she couldn’t watch it. The scratchy screen of the after-hours television looked into Grandma all through the night. No one could endure the loneliness of Grandma, who had survived alone. My uncle closed all the curtains without a word.

Grandma never told me, not once, what she really saw. In the glimmer of light that seeped into the closet, she spoke to me, moving only her lips. When the bomb goes off, you should cover your ears and eyes like this and lie with your face down on the floor. Grandma made me lie down first and then lay down with one arm over me. I opened my eyes slightly and listened to Grandma’s dim breathing and the sound of her phlegm. Thinking that I might go blind and deaf if a bomb exploded over the roof. Thinking that I might die with my skin burnt and swollen.

Grandma was afraid of people shedding their skin as if wearing a dozen layers of gloves, people with their skin frozen like rocky ice and faces shining with brilliance. I followed Grandma and stayed quiet, without knowing what her fear meant exactly.

With Grandma gone, I stood on tiptoes on a chair in the kitchen and opened up all cupboards. There was a small jar full of white sugar cubes that Grandma had collected. I took one out, put it on my palm, and broke it bit by bit with my fingernail. The sugar was like fine white sand. It was like Grandma’s crumbing body. I tasted it. The sugar melted on my tongue and disappeared slowly. Grandma didn’t want to lose anything that was precious to her. That’s why she never ate any of the sugar cubes. I put the lid back on and placed Grandma’s jar back in the cupboard.

I didn’t really understand when my mother said when people die, they can go anywhere, but at the same time, their spirits can stay anywhere in the world. I thought of Grandma having become thousands of spirits after her death. Then her spirit could stay in my pencil case, mother’s drawer, and Grandma’s pocketbook. Perhaps Grandma’s body as a spirit was endlessly huge, like a train traveling the milky way. Then Grandma’s spirit could head toward Hiroshima while her feet could stay here.

Once I read a folk tale of Jeju. Long ago, the grandmother in the tale was alone with a huge body. For her to sleep she had to lie down with Hallasan Mountain as her pillow, and if she was to stretch her legs, she ended up making holes on the island. The hills on the island were lumps of earth that the grandmother had dropped while walking around, and the creeks on the island were traces of her pee. The grandmother had five hundred children. One day, she was cooking porridge in a cauldron as large as Hallasan Mountain while her children were out in the ocean, and she fell into the cauldron and died. When her children came back, they were so hungry that they forgot about their mother as they hurriedly ate the porridge. They only became aware of her death upon seeing her shoes at the bottom of the cauldron. The children cried and cried until they became rocks, and their tears bloom up as red flowers every year. Tears from several ten thousand years ago are still shining in red on that island, even without anyone to see. I could never forget that tale. I thought of my grandmother standing with one foot on Hiroshima, her home that she wished so much to see, and another foot on Busan, my grandfather’s home where she stayed until her death, and though I could not see it with my eyes, believed in it.

花子(ファジャ)の中の花子』 ―チャン・へリョン

祖母が亡くなった時、母はその亡骸を私に見せてはくれなかった。八歳の私にとって、死というものはおぼろげなものに過ぎなかった。死とは、おばあちゃんが体から離れ、魂になること。魂になった者がどこへでも行くことのできる、果てしない旅。おばあちゃんは魂になったから、どこにでも居られるのだと、母は言った。じゃあ、おばあちゃんは、ここにもいるの? 母は黙って頷いた。

祖母は、ずいぶん長いことかくれんぼをしていた。伯父のアパートの祖母が使っていた部屋のドアを、私は開けた。明かりを消した真昼に彼女がよく身を隠していたたんすの扉を、そっと。ハンガーにかかっている、人の形をした洋服から祖母の匂いがした。みぃつけた。おばあちゃん、なんでここに隠れてるの? たんすの扉を開けると、祖母はぬっと手を伸ばし、その中へ私を引っ張り込んだ。祖母は私が生まれる前に視力を失い、いつしか光を恐れるようになった。おばあちゃん、なんで光が怖いの? 私が重ねて聞くと、祖母は片手で私の頰を撫でながら、もう片方の手は指を立てて自身の唇に当てた。飛行機が頭の上を通り過ぎるから静かにしなさい、という合図だった。騒がしくしとると兵隊さんたちが来て、連れて行かれちまうよ。

その目で多くを目の当たりにしすぎた者は、目が眩んでしまう。祖母はすでに目が見えなかったにも関わらず、いまだ見える人のように目を見開くことがよくあった。そのぼんやりした灰色の目は、目の前の世界を超えた、遥か遠くを眺めているような気がした。目の前がうまく見えないというのは、世界が黒く見えるということだろうか、白く見えるということだろうか。それとも、黒でも白でもない、なんの色もない状態に留まるということなのだろうか。祖母は光を恐れていたから、光そのものは感じていたはずだ。しかし、光の色合いというよりは、温もりを捉えていたのかも知れない。

ずっと昔、ある午後のことだった。釜山(プサン)にあったそのアパートの南向きのリビングで、祖母は壁にそっと手を当てて、光に触れていた。光は流れる水のようにも、透明な炎のようにも見えた。私は虫眼鏡で光を集め、カーボン紙を燃やそうとやっきになっていた。紙が燃え、煙が揺らぎ、陽ざしの匂いがした。私はその匂いに惹きつけられるように、いつまでもリビングにうつ伏せていた。

何が起きたのか、私にはわからない。その時、祖母はまるで火傷でもしたように壁から手を離し、うずくまったまま叫び声を上げた。それは祖母一人の声ではなく、数千数万の人々のわめき声のようだった。一九四五年八月六日に、広島で死んだ人々の声。吹きすさぶ黒い暴風に巻き込まれてお互いを見失い、降り注ぐ黒い雨の中でお互いを探しながら爆死したという祖母の兄と妹、父と母の声。祖母のお腹の中で死んだという赤ん坊の声。その年、再び身ごもるも死産してしまった、もう一人の赤ん坊の声。

その日、私はようやく寝付いた祖母の姿に、十九歳の祖母を見た。初子を産んだ祖母はむくんだ顔をして、死んだように病床に横たわっていた。揺すっても赤ん坊は泣かなかった。医師は、祖母に死んだ赤ん坊を抱かせてくれた。十月十日にはるかに及ばず生まれてきた、手のひらに収まるほどの小さな赤ん坊。おくるみに包まれた赤ん坊は、青色をしていた。青い、色。プルトニウムが爆発する間際の色。

ばあちゃんの胸ん中にはね、火が燃えさかっとるんよ。祖母はたどたどしい韓国語で、やっとそう言った。祖母は真冬にも、体じゅうが燃えているようだと、胸の上に氷を乗せたまま寝ることがあった。そうすると、体じゅうの火の気が足元へとさあっと引いていく気がすると言った。いつまでも消えない火が怖くて、私は祖母のもとから後ずさりするように遠ざかっていった。

祖母が日本で生まれ過ごした時間は二十年にも満たず、韓国で生きてきた時間は半世紀に近かったが、彼女は今もなお日本語で夢を見、日本語で考えるのだと言った。韓国語で話すのは、日本語で話すよりも時間を要した。パルガンヤク、赤チン。アルムダウン、きれいな。オッパ、おにいちゃん。ケラン、たまご。ムルトン、バケツ。ピッ、ピカ。コッ、お花。祖母の韓国名は花子(ファジャ)。祖母の日本名は花子(はなこ)。韓国で祖母は、「はなこ」を隠し、「ファジャ」として生きた。私の小学校一年生の時の担任の先生も、「ファジャ」という名前だった。もうすぐ引退を控えていた先生は、幼い頃に日本の教育を受けた人だった。私は、先生の「はなこ」は先生の体の中に隠れているのだ、だから先生も祖母と同じように、他の人たちとは違って正座をし、静かに果物の皮を剥くのだと思っていた。

母本人は覚えていないと言うが、私の記憶の中の祖母は時折、母や伯父を日本名で呼んだ。母はしばしば、祖母の日本語を真似して使い、私は母が使うその言葉を真似して使った。言葉は、いつまでも消えない祖母の痛みのように、爆弾の破片のように、私たちの体じゅうに深く刺さっていた。

祖母の言葉には、一九四十年代の日本語と、戦後の釜山の方言が混ざっていた。学校行ったらな、チョーセン、ニンニクってかわかわれるんよ。母ちゃんがかんざし挿してチマチョゴリなんか着てる日にゃあ……アイゴー、恥ずかしいったらなかったよ……ほんまに、今までよう生きてたわ。でも、生きてたら生きてたで、なんでお前だけ生きて帰ってきたんかって言われる。腹の中が煮え繰り返って言葉にもならん。この先どうやって生きていけばええんかって思うたわ。死にきれんから生きてるだけ。身も心もずたずた、デコボコや。大丈夫、心配せんでええ。もう泣かんからな。

祖母の「苦痛」を表現する言葉は、もっぱら日本語だった。イタイ、イタイ。まるで、あの日のあの瞬間に永遠に釘づけになってしまった人のように。イタイ、イタイ祖母はレントゲンを撮らなかった。ガスコンロを使わなかった。原爆の匂いを嗅ぐのが嫌だと言った。祖母はしきりに蛍光灯を隠した。蛍光灯が頭上で瞬くのが、火花が散っているようで怖いと言った。どこかで地震が起こるのが、また戦争になるのが、怖いと言った。

戦争になったら、絶対汽車に乗らんといかん。祖母は、何度も何度も私にそう言い聞かせた。祖母は、見ることもできないテレビのニュースをつけっぱなしにしていた。テストパターンが流れた後の砂嵐の画面だけが、夜通し祖母を見つめていた。たった一人で生き残った祖母の孤独に耐えられる人は誰ひとりいなかった。伯父は無言で、全てのカーテンを閉めた。

その目で何を見ているのか、祖母は決して教えてはくれなかった。ただ、たんすの隙間から微かに差し込む光の中で、唇だけを動かしながら私に言った。爆弾が爆発したらな、こうやって耳と、目と、ちゃんと隠して、床にうつ伏せるんよ。祖母は、まず私をうつ伏せにさせると、片腕で私を包み込みこむようにして、自分も身を伏せた。私は薄目を開けて、祖母の痰が絡んだかすかな息の音を聞いた。屋上の上空で爆弾が弾けたら、目が見えなくなり、耳が聞こえなくなるかもしれない、火に焼けた肌が赤く膨れ上がり、死んでしまうかもしれないと思いながら。

手袋を二十枚もはめているかのように、ぽろぽろと脱皮し続ける人、顔の皮膚がごつごつした氷のように固まり、引きつった表面がてかてか光っている人たちを、祖母は恐れた。私は、祖母のその恐怖が何を意味するのか理解できないまま、黙って一緒に息を潜めた。

祖母のいない台所で、食卓から椅子を運んできてその上につま先で立ち、食器棚の扉を次々に開いてみた。小さな素焼きの壺の中に、祖母が集めた白い角砂糖がぎっしり入っていた。私は、角砂糖をひとつ取り出して手のひらに載せ、爪で少しずつ砕いていった。砂糖は、白くてきめの細かい砂のようだった。砕けていく祖母の体のようだった。口に入れると、砂糖はじわじわと溶け、舌の先でゆっくりと消えていった。おばあちゃんは、大切なものを何ひとつ失いたくなかったんだ。だから、ひとつも食べずに取っておいたんだ。私は蓋を閉じ、祖母の壺を棚に戻した。

人が死んだら、どこにでも行けるのだと、その魂が世界のどこにでも宿るのだと言っていた母の話を、私はよく理解できなかった。だから、死んで数千の魂になった祖母を思い浮かべた。そうすると、その魂は私の筆箱の中にも、母の引き出しの中にも、祖母の手帳の中にも宿ることができた。ひょっとすると魂になった祖母の体は、天の川を旅する列車のように果てしなく、壮大なものなのかもしれない。それならば、祖母の魂の頭は広島に、足はこちら側に留めることもできるはずだ。

いつだったか、こんな済州(チェジュ)()の昔話を読んだことがある。昔々、島のおばあさんは、体があまりにも大きいために一人ぼっちだった。おばあさんは、漢拏山(ハルラサン)を枕にして寝た。足を楽に伸ばして横になるためには、島に穴を空け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島にある小高い山々はおばあさんが歩く度に落とした土の塊、島の川はおばあさんがしゃがんで用を足した跡だった。また、おばあさんには五百人もの子供がいた。ある日、海に出た子供たちのために、漢拏山ほどもある大きい釜でお粥を炊いていたおばあさんは、その中に落ちて死んでしまった。腹を空かせた子どもたちは、母がいないこともかまわずせっせとお粥を食べていたが、やがて釜の底に残る母の履物を見つけ、その死に気づいた。子供たちはいつまでもいつまでも泣き続け、岩になった。その涙が、毎年赤い花となって咲くのだという。数万年も前の涙が今もなお、その島で赤く輝いている。誰の目に留まらずとも。その物語が、いつまでも記憶に残っている。

あれほど帰りたがっていた故郷である広島に片足を、亡くなるまで住んでいた祖父の故郷である釜山にもう片方の足を下ろしている祖母の姿を思い浮かべた。そして、目には見えなくとも、そうに違いないと信じた。